2024.4.20, 12년의 대장정을 끝냈다.
무슨 말이냐하면 아들 유학비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2009년 미국 유학시 같이 나갔던 초등 5, 6학년이었던 아들 딸이 2011년에 귀국하는 나에게
자기들은 남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딱 6개월만 더 하고 귀국하라고 하고, 난 들어왔다.
그 뒤에 난 청와대로 파견을 가서 나는 관사를 얻게 되었고, 아들은 토마스제퍼슨 과학고에 입학을 하게 됐다.
귀국시킬 상황이 안되었다. 그래서 아내는 미국 대학에 입학해서 아들 딸을 뒷바라지 했고,
나는 한국에서 벌어서 보냈다. 그 뒤 6년 6개월 기러기 생활을 했다. 아들 딸이 대학에 입학하자 아내는 귀국했다.
나는 명퇴후에 로펌보다는 창업을 택했다.
창업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미쳐 모른채.
그래도 8년이나 되었다.
아직도 해결해야 일은 있지만 이제 학비를 안보내도 되니 다행이다.
이제 돈이 쌓이려나!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시골에서 5형제 아들 공부시킬 형편이 안되어도 봄가을 누에치고,
밤나무 소작했고, 겨울철 냇가에서 자갈모아 등록금 마련했다.
아침에 통학 차비가 없어서 이웃집에 돈 빌리려 다니셨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떻게 하든 아들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을 혹사시키셨고,
체면을 생각지 않으셨다. 아마 이 땅의 어머님들이 다 이렇게 하셨을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서 그런지 유학시킬 형편이 안되어도 어떻게 하든지 12년을 해 내었다.
그래서 아내와 조촐한 자축연으로 맛있는 저녁 외식을 했다.
12년간 송금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과 가족들에 감사드리고,
사업상 도와준 여러 지인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은혜를 차차 갚아 나가겠습니다.
이제 제 인생을 살려고 다짐합니다. 인생 60세에 터닝포인트했네요.
돈 걱정없이 사는 분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제가 겪은 역경이 곧 경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시대를 어렵게 사는 분들의 형편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다시 먼길을 나섭니다. 이 길은 약 20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통계뱅크의 세계화를 위해서.
2024.4.20, 12년의 대장정을 끝냈다.
무슨 말이냐하면 아들 유학비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2009년 미국 유학시 같이 나갔던 초등 5, 6학년이었던 아들 딸이 2011년에 귀국하는 나에게
자기들은 남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딱 6개월만 더 하고 귀국하라고 하고, 난 들어왔다.
그 뒤에 난 청와대로 파견을 가서 나는 관사를 얻게 되었고, 아들은 토마스제퍼슨 과학고에 입학을 하게 됐다.
귀국시킬 상황이 안되었다. 그래서 아내는 미국 대학에 입학해서 아들 딸을 뒷바라지 했고,
나는 한국에서 벌어서 보냈다. 그 뒤 6년 6개월 기러기 생활을 했다. 아들 딸이 대학에 입학하자 아내는 귀국했다.
나는 명퇴후에 로펌보다는 창업을 택했다.
창업이 이렇게 어려운 줄을 미쳐 모른채.
그래도 8년이나 되었다.
아직도 해결해야 일은 있지만 이제 학비를 안보내도 되니 다행이다.
이제 돈이 쌓이려나!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시골에서 5형제 아들 공부시킬 형편이 안되어도 봄가을 누에치고,
밤나무 소작했고, 겨울철 냇가에서 자갈모아 등록금 마련했다.
아침에 통학 차비가 없어서 이웃집에 돈 빌리려 다니셨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떻게 하든 아들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을 혹사시키셨고,
체면을 생각지 않으셨다. 아마 이 땅의 어머님들이 다 이렇게 하셨을 것이다.
나도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서 그런지 유학시킬 형편이 안되어도 어떻게 하든지 12년을 해 내었다.
그래서 아내와 조촐한 자축연으로 맛있는 저녁 외식을 했다.
12년간 송금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과 가족들에 감사드리고,
사업상 도와준 여러 지인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은혜를 차차 갚아 나가겠습니다.
이제 제 인생을 살려고 다짐합니다. 인생 60세에 터닝포인트했네요.
돈 걱정없이 사는 분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제가 겪은 역경이 곧 경력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시대를 어렵게 사는 분들의 형편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다시 먼길을 나섭니다. 이 길은 약 20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통계뱅크의 세계화를 위해서.